특이점이 안 온다
투자는 공공이 하고 결정권은 민간에 남는다
레이 커즈와일이 『특이점이 온다』를 쓴 건 2005년이다. 기계 지능이 인간을 넘어서는 순간, 기술 곡선이 수직으로 꺾이고, 인류 전체가 그 위에 올라탄다는 예언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절반은 맞았고 절반은 틀렸다.
맞은 건 곡선이다. GPT-2에서 GPT-5.4까지 걸린 시간을 보면 커즈와일의 지수 곡선은 오히려 보수적이었다. 틀린 건 "인류 전체"라는 주어다. 특이점은 오고 있다. 하지만 모두에게 오지는 않는다.
이 글은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한다. 국민 세금으로 만드는 AI 모델이라면, 그 모델의 조건을 정하는 건 누구인가?
증거는 이미 나왔다.
2024년 초 중국 AI 업계의 분위기는 "오픈소스 열풍"이었다. 바이트댄스 두바오는 토큰 천 개당 0.0008위안, 알리바바는 천 위안어치 크레딧을 무료로 뿌렸고, DeepSeek은 오픈소스 진영의 대표 주자였다. 누구나 최첨단 모델의 가중치를 다운로드받아 자기 GPU에 돌릴 수 있었다.
2026년 봄, 풍경이 뒤집혔다. 지푸(Zhipu)의 최신 GLM API를 사려면 매일 아침 10시에 줄을 서야 한다. 83%를 올려도 공급이 부족하다. Qwen 3.6 Plus는 비공개로 전환됐고, GLM5.1은 폐쇄 모델로 중국 1위다. MiniMax 2.7은 오픈소스 라벨만 남겨두고 상업 이용은 별도 라이선스로 돌렸다. 패턴은 명확하다. 플래그십은 닫히고, 소형만 제한적으로 풀린다.
이 전환을 미중 기술 냉전 프레임으로 읽으면 절반만 본 것이다. 닫히는 진짜 이유는 단순하다. 모델이 드디어 돈이 되기 시작했다. 일평균 토큰 소비량이 2024년 초 1.2조에서 2026년 3월 1,400조로 1000배 뛰었다. 이 규모 앞에서 무료 제공은 자선이 아니라 자살이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한 달 전 "오픈소스 열풍"을 외치던 기업이, 한 달 뒤 83% 가격 인상을 공지하는 데 걸린 시간이 얼마였나. 기업의 호의는 시장 조건이 바뀌면 함께 바뀐다. 이건 악의가 아니라 사업의 본성이다. 호의에 기대는 건 계약이 아니라 소원이다.
특이점에서 배제되는 구조.
커즈와일이 상상한 특이점은 공유재였다. 지금 일어나는 건 다르다. AI 혁명의 원천기술을 가진 쪽은 미국, 빠르게 따라잡은 쪽은 중국. 두 나라 모두 프론티어를 닫는다. 레시피는 둘이 나눠 갖고, 나머지 세계는 그 레시피로 만든 요리를 돈 주고 사 먹는다.
이게 특이점이 오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다. 정확히는, 특이점은 온다 — 워싱턴과 베이징에. 나머지 국가에는 특이점이 "도착"한다. 그 시점과 조건과 가격은 도착지가 정하는 게 아니다.
이미 공개된 가중치들(DeepSeek V3, Qwen 3.5, Apache 2.0의 Gemma 4)은 회수 불가능하다. 수십만 노드에 복제됐다. 하지만 폐쇄 전환은 미래의 플래그십에만 유효하다. 지금부터 나올 진짜 강한 모델들 — 바로 특이점 근처의 모델들 — 은 가중치조차 볼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이 지형 위에서 한국은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독파모) 프로젝트를 돌리고 있다. 2025년 8월 5개 정예팀이 선정됐고, 2026년 1월 1차 평가에서 LG AI연구원, SK텔레콤, 업스테이지 3팀이 2차에 진출했다. 네이버클라우드와 NC AI는 탈락했다. 2027년까지 국민 세금 5,300억 원을 투입해 최종 2팀을 남긴다.
여기까지는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 프론티어를 직접 만들지 못하면 특이점에서 소외된다는 진단에 동의한다면, 국가가 개입해서라도 만들어보는 시도는 타당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독파모가 오픈 웨이트로 공개된다"는 게 이 프로젝트의 자랑처럼 얘기된다. 정말 그런가?
"진짜 오픈"이라는 게 뭔지 먼저 보자.
미국 Allen Institute의 OLMo 3는 가중치 공개에 그치지 않는다. 15조 토큰 규모의 사전학습 데이터(Dolma 3) 전체, 중간 훈련 데이터, 사후 훈련 데이터(Dolci), 학습 코드, 수천 단계의 중간 체크포인트, 학습 로그, 그리고 모델 출력이 어느 학습 데이터에서 나왔는지 역추적할 수 있는 OlmoTrace 도구까지 전부 공개한다. 이것이 "full model flow"라고 부르는 수준의 개방이다.
허깅페이스의 SmolLM3는 학습 과정에서 겪은 실패와 회고까지 가이드북으로 배포했다. 엔비디아의 Nemotron 3도 학습 데이터와 방법을 상세 공개해 화제였다.
공적 자금으로 만들어진 소버린 모델들의 개방 수준은 더 높다. 스위스 EPFL·ETH와 CSCS 슈퍼컴퓨터 센터가 만든 Apertus는 15조 토큰 전체, 웨이트, 중간 체크포인트, 학습 코드, 기술 문서를 Apache 2.0으로 풀었다. 상업 이용도 자유다. 특히 주목받은 건 사전학습 데이터부터 저작권·개인정보 옵트아웃을 준수한 공개 데이터만 썼다는 선언이다.
스위스가 이렇게 한 이유는 기업을 신뢰해서가 아니다. 신뢰할 필요가 없도록 설계한 것이다. Apache 2.0에 데이터·코드·체크포인트까지 공개하면, 특정 기업이 가격을 올리거나 접근 조건을 바꿔도 다른 누군가가 같은 기반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호의가 아니라 구조로 국민주권을 보장한 것이다. "공공이 공공을 위해 만든 AI가 고속도로·상수도·전기 같은 공공 인프라가 될 수 있다"는 게 이 프로젝트의 철학이었다.
이제 독파모를 보자.
1차 평가를 통과한 3팀의 개방 수준은 제각각이다.
SK텔레콤의 A.X K1은 Apache 2.0 라이선스를 적용했다. 500B급으로 국내 최대 규모이면서, 상업 이용도 자유롭고 수정·재배포에 제한이 없다. 독파모 참여 팀 중 라이선스가 가장 개방적이다. 업스테이지의 Solar Open 100B도 오픈을 표방하지만, 상세 조건은 유동적이다.
LG AI연구원의 EXAONE은 라이선스가 "EXAONE AI Model License Agreement 1.2 - NC"다. NC는 Non-Commercial. 연구·학술용만 허용, 상업 배포는 LG와 별도 협상해야 한다. 2024년 EXAONE 3.0 때부터 2026년 4월 EXAONE 4.5까지 일관된 정책이다. 1차 평가 전 항목에서 최고점을 받은 팀이 가장 폐쇄적인 라이선스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1차에서 탈락한 네이버클라우드는 플래그십 모델을 비공개로 운영하면서, 경량 모델(SEED 시리즈, 0.5B~3B)만 MIT 라이선스로 풀었다. 플래그십은 닫고 소형만 제한적으로 푸는 구조는 앞서 본 중국의 패턴과 닮았다.
그런데 라이선스만으로는 개방의 전체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어느 팀도 학습 데이터 전체, 학습 코드, 중간 체크포인트, 옵티마이저 설정, 데이터 큐레이션 로그를 공개하지 않는다. OLMo나 Apertus 기준으로 보면 기본값인 것들이다. 독파모의 개방은 대부분 Open Weight 수준, 즉 최종 가중치 파일 공개에 머물러 있다.
"소버린"이라는 말의 두 번째 의미.
독파모의 출발점은 외국 AI에 종속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 기준에서는 NC 라이선스든 Apache 2.0이든 "국산"이면 일단 통과다. 주권의 상대방이 미국·중국이다.
그러나 소버린에는 또 다른 층위가 있다. 국민 세금으로 만든 모델의 이용 조건과 가격을 누가 정하느냐. 이 층위에서 주권의 상대방은 외국이 아니라, 세금을 받아 모델을 만든 국내 기업이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개방 수준에 따라 주권의 범위가 완전히 달라진다.
NC 라이선스는 외국 종속에서는 벗어나지만, 국민과 중소기업은 상업적으로 쓸 수 없다. 주권이 기업의 경계에서 멈춘다. Apache 2.0은 외국 종속 탈피에 더해 상업 이용이 자유롭다. 주권이 시민과 산업까지 확장된다. Fully Open ─ 가중치, 학습 데이터, 코드, 체크포인트, 훈련 레시피 전체 공개 ─ 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누구든 재현하고 개선할 수 있으므로, 시간이 지나도 주권이 유지된다. 2027년의 가중치가 2030년에 쓸모없어져도, 데이터와 레시피가 남아 있으면 새 모델을 훈련할 수 있다. 주권이 현재뿐 아니라 미래까지 이어진다.
국민 세금 5,300억이 들어가는데, 왜 결과물의 통제권은 기업에 남는가?
이건 시간이 지나면 통제권 문제로 돌아온다.
지금 독파모는 "국가대표"라는 수식이 붙어 있어서 결정권이 어디에 있는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돈을 주고, 기업이 받아서 만든다. 언론 보도도 대체로 우호적이다.
그러나 시나리오를 3년만 앞으로 돌려보자. 2027년에 최종 선정된 2팀의 모델이 공공 부문에 대규모로 깔린다. 행정부, 공기업, 지자체, 학교. 한국어 처리가 잘 되고, "국산"이라는 안전마진이 있고, 정부가 발주 명분으로 밀어준다. 몇 년이 지나면 우리가 지금 중국 모델들에서 보고 있는 바로 그 장면이 재연된다.
가격이 오른다. 접근 조건이 바뀐다. "이 모델의 운영 비용은 이제 우리가 책정한다"는 말이 회의 테이블에 올라온다. 폐쇄 가중치라서 대안이 없고, 학습 데이터와 레시피를 모르니 다른 누군가가 비슷한 걸 만들 수도 없다. 지푸의 83%는 남의 얘기가 아니다. 그때쯤 가격과 조건을 정하는 건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기업의 악의가 아니다. 사기업이 수익을 추구하는 건 당연하고, 매몰 비용을 회수하려는 것도 자연스럽다. 문제는 공공이 돈을 대는 순간에 그 자연스러움을 제어하는 설계를 해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이 호의적일 것이라고 믿는 것 자체가 설계의 실패다. 스위스가 Apertus에 Apache 2.0과 전체 데이터·코드 공개를 걸어둔 건 기업을 믿어서가 아니라, 믿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추론 인프라에 대한 주권이 빠져 있다.
독파모 논의는 대부분 "어떤 모델을 만들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모델은 추론 인프라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그리고 추론 인프라야말로 주권 확보의 마지막 고리다.
모델을 훈련하는 데는 GPU가 한 번 대규모로 필요하다. 그러나 모델이 실제로 쓰이는 순간 ─ 공무원이 민원을 분류하고, 법령을 검토하고, 정책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순간 ─ 에는 추론 연산이 매초 필요하다. 훈련은 일회성이지만 추론은 영구적이다. 그리고 이 영구적 연산이 어디서, 누구의 인프라 위에서, 어떤 조건으로 돌아가느냐가 결국 결정권의 소재를 정한다.
엔비디아가 APEC에서 약속한 26만 장의 GPU가 어디에, 어떤 구조로, 누구에게 어떤 조건으로 배치되는지가 "K-모델이 GPT-6의 몇 %까지 가느냐"보다 훨씬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델은 2년마다 교체되지만, 추론 인프라는 10년을 간다. 지금 깔리는 구조가 10년간 누가 조건을 정하는지를 결정한다.
CDN이 콘텐츠를 사용자 가까이 복사해둔 것처럼, 토큰 시대에 주권은 연산을 사용자에게 가장 가까이 밀어넣는 "추론의 마지막 마일"에 있다. 이 마지막 마일이 특정 기업의 클라우드 안에만 있으면, 모델이 아무리 오픈 웨이트라 해도 실질적 통제권은 인프라 보유자에게 있다. 가중치 파일을 다운로드받을 수 있어도, 그걸 돌릴 GPU가 한 곳에만 있으면 오픈이 아니다.
소버린 AI라는 말이 진짜 의미를 가지려면, 모델의 개방성만이 아니라 추론 인프라의 공공성까지 설계에 포함되어야 한다. 누가 GPU를 소유하고, 누가 접근 조건을 정하고, 가격 결정권이 어디에 있는지. 이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소버린"은 라벨에 불과하다.
모델을 사는 쪽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흔히 빠뜨리는 질문이 있다. "누가 그 모델을 사서, 어떻게 쓰는가?"
폐쇄 전환의 진짜 위험은 단순히 모델 가격이 오르는 게 아니다. 사용자 쪽이 자기 업무를 공급자보다 잘 안다는 전제가 무너지는 순간 시작된다. 지금 지푸가 83%를 올릴 수 있는 건 GLM의 성능 때문이 아니라, 그걸 대체할 방법을 아는 사람이 그 조직 안에 없기 때문이다. 기술이 아니라 정보의 비대칭이 가격을 만든다.
이 구조를 국내로 가져와보면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2028년 어느 날 독파모 기업이 공공 부문 라이선스 조건을 재협상하자고 제안한다고 치자. 테이블 반대편에 앉는 쪽은 누구여야 하는가?
답은 단순하다. 행정 업무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쪽이어야 한다. 민원 처리 흐름, 법령 해석 관행, 부처 간 협업 규칙, 개인정보와 공개 데이터의 경계, 감사 포인트 — 이런 걸 매일 다루는 조직이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으면, AI 벤더가 제시하는 가격과 기능 명세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다. 기술 스펙만 보는 쪽은 "이 모델의 MMLU 점수가 경쟁 모델보다 3점 높다"는 주장에 반박할 도구가 없다. 그러나 행정 현장을 아는 쪽은 "그 3점이 우리 민원 응대 품질에 실제로 어떤 차이를 만드느냐"를 물을 수 있다. 이 질문의 차이가, 10년 누적 예산의 차이가 된다.
한 걸음 더 들어가면, 협상력은 조직 구조 자체에서 나온다. 공공 AI의 모든 의사결정이 한 곳에 모이는 단일 창구 구조는 편리해 보이지만, 벤더 관점에서는 공략 대상이 하나로 줄어든다는 뜻이다. 한 곳을 설득하면 전체 시장이 열린다. 반대로 공공 AX 기능이 여러 지점에 분산되어 있으면, 각 지점이 서로 다른 기준과 벤치마크로 같은 벤더를 검증한다. 한쪽에서 통과된 논리가 다른 쪽에서 막힌다. 벤더는 모든 접점에서 동시에 설득 비용을 치러야 한다. 이 비용 구조 자체가 납세자의 협상 레버리지다.
무엇을 바꿀 수 있는가.
이런 방향을 고민해볼 수 있다.
하나, 단계평가에 개방 수준을 핵심 지표로 넣는 것이다. 지금의 평가 기준은 주로 성능, 멀티모달, 산업 적용성이다. 여기에 라이선스 개방성과 재현 가능성을 함께 반영하면 그림이 달라진다. Apache 2.0 같은 허용적 라이선스를 최소 조건으로 걸고, OLMo·Apertus 수준의 공개에 가까울수록 가점하는 구조다. 1차 평가 최고점 팀의 라이선스가 NC(비상업)라는 현실은, 지금의 평가 설계에 이 기준이 빠져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민 세금이 들어간 모델이 상업 이용 금지라면, 주권의 범위는 기업 경계에서 멈춘다.
둘, 데이터와 레시피의 공개를 웨이트 공개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웨이트는 한 시점의 스냅샷이지만, 학습 데이터·레시피·중간 체크포인트는 "미래의 한국이 계속 훈련할 수 있는 능력"이다. 2027년의 웨이트가 2030년에 쓸모없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인데, 그때 우리에게 남는 게 쓸모없는 파일 하나인지, 새 모델을 훈련할 수 있는 역량인지가 진짜 차이를 만든다. 여기에 행정 데이터, 법령, 판례, 정책 문서 같은 한국에만 있는 공공 데이터를 정제해 훈련 코퍼스로 개방하는 작업이 함께 가야 한다. 모델은 교체되지만 데이터 체계는 남는다.
셋, 추론 인프라의 결정권을 공공에 두는 것이다. 앞서 별도로 다뤘지만 다시 강조할 만하다. 모델의 라이선스가 아무리 개방적이어도, 그 모델을 돌리는 GPU가 특정 기업의 클라우드 안에만 있으면 실질적 통제권은 인프라 보유자에게 돌아간다. 추론 인프라를 공공이 소유하거나, 최소한 접근 조건과 가격 결정권이 공공에 있는 구조를 지금 설계해야 한다.
특이점의 문 앞에서.
역사는 폐쇄가 종점이 아니라는 걸 반복적으로 보여줬다. Oracle이 MySQL을 방치하자 MariaDB가 자랐고, Redis가 라이선스를 바꾸자 Valkey가 포크됐다. Meta는 Llama를 오픈소스로 유지하며 경쟁자들의 폐쇄 프리미엄을 깎아내린다. 1티어가 닫히면 2티어와 3티어는 더 공격적으로 오픈에 올인한다.
한국은 어디에 서야 하는가. 답은 분명하다. 1티어의 꽁무니를 따라가는 95%짜리 모방자가 아니라, 진짜 오픈을 공공 자금의 기본 원칙으로 박아두는 나라. 스위스가 Apertus로 했고, Allen Institute가 OLMo로 증명한 그 자리다. 지금 비어 있고, 미국과 중국이 프론티어를 닫을수록 오히려 이 자리의 전략적 가치는 올라간다.
커즈와일의 특이점은 기술의 이야기였다. 실제로 오는 특이점은 권력의 이야기다. 누가 문을 열고, 누가 그 앞에서 기다리고, 누가 그 문을 통제하는가. 우리는 두 번째 문제에서 세 번째 문제로 미끄러지는 중이다. 우리 세금으로 만든 모델인데 조건을 정하는 건 우리가 아닌 구조.
이걸 바로잡지 못하면 특이점은 오지 않는다. 더 정확히는 — 특이점은 오는데, 투자는 국민이 하고 결정권은 기업에 남는다.
지금 묻고 싶은 건 하나다. 우리가 만들고 있는 건 국민의 AI인가, 기업의 AI인가?
답이 바뀌지 않으면, 1년 뒤 3년 뒤 그 AI가 국민을 상대로 얼마를 청구할지는 우리가 정하지 못한다. 그 테이블에 누가 앉아 있는가, 그 테이블이 몇 개로 나뉘어 있는가가 결국 남는 것의 크기를 정한다.
국민 세금으로 만드는 모델이라면 결정권은 국민에게 있어야 한다. 그 결정권을 확보하는 방법은 세 가지다. 결과물이 진짜 공공재가 되도록 개방 설계를 걸어두는 것, 추론 인프라의 통제권이 공공에 남도록 구조를 짜는 것, 그리고 그 결과물을 받아 쓰는 쪽이 협상 테이블에서 밀리지 않을 만큼 현장을 알고 다원화되어 있는 것. 셋 중 하나라도 빠지면 "소버린 AI"라는 이름은 기업에 대한 납세자의 선물에 불과하다.

